어머니께서 농사지은 걸 가져가라 하셔서 부모님 댁에 왔다. 아버지도 계셨고, 도착해 보니 어머니가 주무시고 계셔서 잠깐 대기하는 시간이 생겼다. 그 틈에 단비를 다시 봤다. 단비는 오늘은 꽤 놀았다.

단비는 2013년생 여아다. 가족과 오래 추억을 함께한 강아지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예전의 기억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어릴 때 뛰어다니던 발소리와, 지금은 조심스레 옮기는 걸음이 한 줄로 이어진다.

분홍 지붕 집 안 초록 매트 위에 누워 카메라를 바라보는 흰 강아지 단비
부모님 댁의 단비. 2013년생 여아로, 가족과 오래 추억을 쌓아 온 아이다.

1. 다시 마주한 단비

분홍 지붕 집 안, 초록 매트 위에 단비가 누워 있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이 깊다. 흰 털은 여전한데, 표정에는 나이가 묻어 있다.

단비의 앞발을 손으로 조심스레 잡고 있는 모습
오래 못 와서 미안한 마음과, 그래도 손끝에 올려 준 발 하나.

손을 내밀자 앞발을 올려 줬다. 자주 오지 못해 미안한데, 그 작은 발이 손끝에 닿는 순간만큼은 멀리 있었던 시간이 조금 짧아진다.

마루에서 아버지 손에 등을 맡기고 편안하게 누워 있는 단비
아버지도 계셨다. 단비가 쓰다듬어 주니 몸을 맡기고 놀았다.
배를 보이며 위를 올려다보고 장난치는 단비
다리 아픈 날도 있지만, 이렇게 배 까고 노는 순간도 있다.

아버지도 같이 계셨다. 쓰다듬어 주니 단비가 몸을 맡기고, 배까지 까며 놀았다. 노령견이라고만 보면 놓치는 장면이다.

무릎 위에 배를 보이며 안겨 위를 올려다보는 단비
무릎에 안으니 배를 까고 몸을 맡겼다.
무릎에 안고 등을 쓰다듬는 단비
무릎에 올려 안고 쓰다듬는 사이, 단비는 가만히 기대 있었다.

무릎에 올려 안아 보니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배도 까고, 등에 손을 올려 줘도 도망가지 않았다. 자주 못 오는 날의 미안함이, 잠깐이나마 덜어지는 순간이었다.

2. 다리가 아픈 날들

슬개골이 아픈지, 종종 다리를 전다. 나이가 많아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 뛰라고 보채기보다, 쉬는 자리를 따뜻하게 두는 쪽이 요즘의 현실이다.

분홍 지붕 반려견 하우스와 온열매트 조절기, 급수기
따뜻한 자리와 물그릇이 갖춰진 단비의 자리. 나이 든 다리를 챙기는 흔적이다.
하우스 안 초록 매트에서 고개를 숙인 채 쉬는 단비
슬개골이 아픈지 종종 다리를 전다. 나이가 많아 움직임도 힘들어 보인다.

하우스 옆에는 급수기가 있고, 매트 아래로는 온열 조절기가 보인다. 큰말은 없어도, 집이 단비를 챙기고 있다는 흔적이다.

3. 자주 못 오는 미안함

운동도 시켜 줘야 하는데, 자주 오진 못한다. 올 때마다 “오늘은 좀 걸을까” 생각하다가도, 단비가 길게 늘어져 있으면 발걸음을 줄이게 된다.

멀리 사는 가족이 반려견을 돌보는 방식은 늘 반쪽이다. 매일의 산책은 부모님께 맡기고, 나는 올 수 있는 날에 얼굴을 맞추는 정도다. 그래도 그 정도라도 와야 한다고, 오늘 다시 느꼈다.

마루에 옆으로 길게 누워 쉬는 흰 강아지 단비
운동도 시켜 주고 싶지만, 자주 오지 못하는 날엔 이렇게 쉬는 모습만 오래 보게 된다.

4.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어머니는 주무시고, 아버지는 계셨다. 나는 컵을 들고 바닥에 앉았다. 단비도 가까이 와서 놀다가 다시 누웠다. 농산물 챙겨 가라는 말씀 때문에 왔는데, 먼저 도착한 건 조용한 대기실과 단비의 장난이었다.

바닥에 누운 단비와 손안의 작은 스테인리스 컵
어머니께서 주무셔서 잠깐 대기하는 중. 커피 한 모금과 단비의 숨소리만 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단비의 숨소리와, 오래 못 본 집의 공기가 그 자리를 채웠다.

5. 남기고 싶은 말

노령견은 “어제와 같은 아이”가 아니다. 같은 이름인데 걸음이 달라지고, 쉬는 시간이 길어진다. 자주 못 가도, 올 때는 발과 눈과 쉬는 자리를 천천히 보면 된다.

오늘은 농산물보다 먼저 단비를 만났다. 어머니가 일어나시면 말씀하신 것도 챙기겠지만, 이 글에 남는 건 손끝에 올려 준 발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