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김 빠지듯 하루가 갔다. 어린이집에서 딸아이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예약부터 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갔던 익숙한 소아과였다. 익숙한 곳이라고 검진 결과까지 가볍게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설치된 대형 그물 오르기 놀이기구
예전에는 구경만 하던 큰 놀이기구를 이제는 혼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1. 어린이집 안내로 다시 찾은 소아과

어린이집 안내를 받고 예약한 곳은 작년과 재작년에도 방문했던 소아과였다. 익숙하게 접수를 하고 검진을 받았지만, 앞으로 챙겨야 할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검진표를 보며 또래 기준으로 키는 14등, 몸무게는 2등이라고 들었다. 몸무게가 조금 나가는 편이니 아이스크림이나 단 음식은 줄이고 운동을 더 하라는 설명이었다.

  • 아이스크림과 단 간식을 줄여보기
  • 우리 아이는 저지방 우유를 고려해 보기
  •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늘리고 TV와 휴대전화 시간은 줄이기

양쪽 시력 차이도 있어 안과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귀지가 많아 진료 중에 빼기도 했다. 짧은 검진이었는데 앞으로 챙겨야 할 일이 여러 개 생겼다.

2. 검진 뒤 먹은 복날 삼계탕

2026년 초복 중복 말복 날짜가 적힌 달력 화면
2026년 초복인 7월 15일, 건강검진을 마치고 딸아이와 삼계탕을 먹었다.

마침 복날이라 전에 아내와 갔던 식당에 딸아이를 데리고 갔다. 메뉴에 공깃밥이 보이지 않아 망설였지만, 다섯 살 아이에게 삼계탕 한 그릇을 따로 주문하기도 애매해 일단 들어가 물었다. 천 원을 내면 공깃밥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메뉴에는 없는데 공깃밥 있나요?

삼계탕은 내 것 하나를 주문하고 공깃밥을 받아 딸아이 몫을 덜어줬다. 다행히 밥도 닭고기도 제법 잘 먹었다. 병원에서 음식 이야기를 잔뜩 듣고 나온 뒤라 그런지 그 한 끼를 잘 먹는 모습이 유난히 고마웠다.

3. 그림을 그리고, 큰 놀이기구에도 올라가고

식사 뒤에는 다이소에 들러 그림 그리는 책과 사인펜을 샀다.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카페에도 갔다. 아이스크림과 빵은 오늘부터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에 사주지 않았다.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딸아이가 새 책에 그림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봐줬다.

결제정보와 식별정보를 모자이크한 카페 아메리카노 영수증
아이스크림과 빵 대신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딸아이의 그림을 봐줬다.
나무와 관목이 우거진 아파트 단지 산책길
놀이터로 가는 길, 초록이 짙어진 단지 안을 딸아이와 함께 걸었다.

그대로 집에 갈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놀이터 이야기를 꺼냈다. 근처 아파트 단지의 큰 놀이기구에서 한참 놀았다. 예전에는 무섭다고 아래에서 구경만 하더니 이제는 혼자 꼭대기까지 올라가 씩씩하게 내려왔다. 안 간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 데리고 나오면서도 그 모습만큼은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4. 늦은 밤, 그럼 뭘 먹어야 돼?

집에 오는 길부터 졸려 보였는데 본인은 졸리지 않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피곤한 얼굴로 짜증도 냈다. TV와 휴대전화를 줄이라는 의사 말은 계속 머리에 남았다. 아이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왜 잘해주기보다 화부터 내는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기고 그림을 더 그리게 했다. 어제와 오늘 읽었던 동화책도 다시 꺼내 약 20분 동안 읽어줬다. 대단한 교육은 아니어도 오늘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이었다.

밤 10시 40분쯤 딸아이가 배고프다며 과자를 들고 왔다. 먹으면 안 된다고 하자 과자를 내려놓으며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럼 뭘 먹어야 돼?

그 말을 듣고 밥에 멸치를 챙겨줬다. 조금 더 일찍 배고픈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루 종일 같이 다니고도 그걸 놓친 것 같아 미안했다. 밥을 먹자마자 재울 수는 없어 TV를 잠깐 보여줬고, 결국 같이 방에 들어가 재운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

5. 자책보다 내일부터 하나씩

오늘 하루에 당장 바꿀 일만 여러 개 생겼다. 전부 한꺼번에 잘하려 하기보다 내일부터 반복할 수 있는 것부터 정해보기로 했다.

  • 간식과 우유를 살 때 성분을 한 번 더 보기
  • 놀이터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시간을 늘리기
  • TV 대신 그림과 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순서를 만들어보기

못난 아빠라서 아무것도 못 해준다는 생각은 쉽게 든다. 하지만 돌아보면 오늘 병원에도 데려갔고, 밥도 먹였고, 그림을 봐주고,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책도 읽어줬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는 아니었다.

딸아이를 재우고 나와 나는 다시 개발을 한다. 건강검진 하나 때문에 별일을 다 겪은 날 같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런 작은 걱정과 작은 실천을 계속 이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